1.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스포일러 포함 줄거리 요약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Manchester by the Sea, 2016)는 삶에 지대한 상실을 겪은 한 남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리 챈들러'는 매사에 무기력하고 말수가 적은 인물로, 보스턴의 허름한 아파트 단지에서 건물 관리인으로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리는 형 '조'의 갑작스러운 죽음 소식을 듣고 고향인 매사추세츠의 해안 도시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향하게 된다. 그곳은 과거 그가 떠났던,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곳이다. 장례를 준비하던 리는 조카 '패트릭'의 후견인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당황한다. 그는 자신의 삶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 아이의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영화는 현재의 이야기와 함께, 리가 과거 이 도시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를 병렬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원래 사랑하는 아내와 세 자녀와 함께 살던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새벽, 술에 취한 채 벽난로 불을 꺼놓은 채 외출했다가 집에 불이 나고, 세 아이 모두 불길에 휩싸여 세상을 떠난다. 리는 자책감에 시달리며 경찰서에서 자살을 시도하고, 결국 고향을 떠나 이름 없는 삶을 택하게 된 것이다. 현재로 돌아온 리는 패트릭과 억지로라도 일상을 이어가 보려 하지만, 맨체스터라는 도시는 여전히 그의 죄책감을 들추고, 숨통을 조여온다. 결국 그는 조카를 맡지 못하고 떠나기로 결심하지만, 완전히 단절하진 않는다. 가까운 도시에 살며 그와 연결된 채로 살아가기로 결정한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구원의 서사를 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법, 회복되지 않는 삶에서도 관계를 선택하는 용기를 조용히 말해주는 작품이다.
2.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인상 깊었던 장면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주인공 리가 전 부인 '랜디'와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장면이다. 둘은 오랜만에 재회했지만, 분위기는 어색함과 미안함으로 가득 차 있다. 랜디는 다시 결혼을 했고, 아이를 임신 중이다. 그녀는 리에게 "우린 서로를 용서할 수 있어"라고 말하며 과거의 고통을 어루만지려 한다. 그러나 리는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한다. 감정이 북받쳐 오르며 결국 말문이 막힌 채 자리를 떠난다. 그리고 고개를 떨군 채, "난 더 이상 아무것도 안에 남아있지 않아"라고 중얼거리며 돌아선다.
이 장면은 단지 이혼한 부부의 재회가 아닌, 삶에서 가장 사랑했고 가장 크게 잃었던 사람과의 관계를 다시 마주하는 순간이다. 우리는 흔히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이 장면은 그런 믿음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리는 여전히 과거에 붙잡혀 있고, 그 죄책감은 일상 속에서 부서지지 않은 채 그대로 존재한다. 용서하겠다는 말조차 그에겐 고통이다. 랜디의 위로는 너무 늦었고, 리는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이 장면을 통해 감독은 인간의 감정이 결코 단선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떤 슬픔은 말로 풀 수 없고, 어떤 고통은 평생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치유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3. 개인 감상평 –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회복"이라는 단어에 반기를 드는 영화다. 대부분의 영화가 상처에서 벗어나고, 과거를 극복하며, 다시 행복을 되찾는 서사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데 반해, 이 영화는 그 모든 것을 포기한다. 주인공 리는 죄책감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그는 용서를 원하지 않으며, 회복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는 죄를 짓지 않았지만 죄인처럼 살아간다. 그리고 영화는 그의 선택을 존중하며 따라간다.
내게 이 영화가 깊게 다가온 이유는, 리의 모습이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진짜 고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 상처를 받으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며 위로를 건넨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아픔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삶이 더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매일을 묵묵히 살아내는 사람들. 리의 모습은 ‘살아가는 것’ 자체가 용기가 될 수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에게 남은 건 무엇도 아니었지만, 그는 여전히 숨 쉬고 있었다. 완전한 구원은 없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이 영화는 더 진실되고 감동적이다. 우리는 모두 완전하지 못한 채, 상처 하나쯤은 안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4. 생각해볼 거리 - 슬픔을 이겨내야하는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가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단순한 감성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여러 가지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며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첫 번째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용서’에 대한 문제다. 과연 타인의 용서가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있을까? 랜디는 리를 용서했지만, 정작 리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용서란 결국 타인의 선언이 아닌, 자기 내면의 결단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또 다른 질문은 ‘슬픔을 이겨내야 하는가, 함께 살아가야 하는가’이다. 많은 작품이 슬픔을 극복 대상으로 삼지만, 이 영화는 슬픔과 공존하는 삶을 그린다. 리는 자신의 과거를 지우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는 조카와의 관계를 통해 단절이 아닌 ‘연결’을 택했고, 그것이 이 영화가 제시하는 한 가지의 삶의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우리 주변에도 리처럼 조용히 무너져가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다. 말하지 않아서 모를 뿐, 어떤 이들은 누구보다 무겁고 깊은 죄책감을 품고 살아간다. 우리는 그런 이들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이 영화는 화려한 언어 대신 침묵 속에 감정을 담는 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침묵이 때로는 가장 강력한 목소리일 수 있다는 것도.
5. 비슷한 감정선의 영화 추천
<맨체스터 바이 더 씨>가 주는 깊은 감정선에 울림을 느꼈다면, 비슷한 분위기와 주제를 다룬 영화들도 함께 감상해 보길 추천한다. 이 영화들과 함께 보면, 삶과 죽음, 슬픔과 희망, 죄책감과 용서에 대해 조금 더 넓고 깊게 사유할 수 있을 것이다.
- <레볼루셔너리 로드> (2008) – 결혼과 개인의 욕망, 불행한 현실 속에서 무너지는 부부의 이야기. 일상 속 감정의 붕괴가 섬세하게 그려진다.
- <더 파더> (2020) –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현실과 기억이 뒤섞이며 관객도 혼란을 겪게 만든다.
- <스틸 앨리스> (2014) – 언어학자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뒤 서서히 자신을 잃어가는 과정.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자신을 잃는 죽음의 또 다른 형태.
- <밀양> (2007) – 아이를 잃은 여인의 신앙과 분노, 용서의 한계에 대한 탐구. 심리적 고통을 가장 날카롭게 그려낸 작품 중 하나.
- <더 레슬러> (2008) – 은퇴한 프로레슬러가 자신의 삶과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 육체적 고통과 함께, 삶의 외로움을 직시하게 된다.
이 영화들 역시 <맨체스터 바이 더 씨>처럼 삶을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고통을 정직하게 응시한다는 점에서 강한 공감과 여운을 남긴다.